상품 상세 정보
상품명 명인바둑장기 MB150
제조사 명인
원산지 대한민국
소비자가 28,000원
판매가 21,000원
적립금 420원
상품 옵션
명인바둑장기 MB150

제품사이즈: 펼치면 26x22.5cm T2.3cm
                  접으면 13x22.5cm T4.6cm, 무게 약 770g

휴대하며 바둑을 즐길 수 있는 자석 바둑입니다.
제품에 들어 있는 자석을 떼어 바둑알에 안착시켜주면 쉽게 완성하실 수 있습니다.

*'아래 이미지'에서 제품 전체를 보실 수 있습니다.  

 

** 바둑 **
 
-바둑의 기원
 바둑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많은데, 대체로 고대 중국에서 발명되었다는 것이 유력하다.
*요순창시설
바둑의 유래는 대부분 고대의 전설에 의존하는 형편이며, 사실(史實)이 기록된 문헌도 드물다.
그러한 가운데 지금까지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고대 중국의 요(堯)·순(舜) 임금이 어리석은 아들 단주(丹朱)와 상균(商均)을 깨우치기 위해 만들었다는 설이다.
중국의 고전 《박물지(博物誌)》에 실린 '요조위기 단주선지(堯造圍棋 丹朱善之)'라는 문구에 따르면
기원전 2300년전 요왕이 아들을 위해 바둑을 발명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그런가 하면 《설문(說文)》에는 기원전 2200년경 순왕이 우매한 아들에게 바둑을 만들어 가르쳤다고 밝히고 있으며,
《중흥서(中興書)》에도 '요순이교우자야(堯舜以敎愚子也)'라는 글이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렇듯 내용 자체가 다분히 전설적인데다 구체적이지 못해서
이 '요순창시설'의 사실적 근거가 확실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사실 '어리석은 아들'이라면 바둑을 배우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모순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천체관측설
농경(農耕)사회였던 고대에는 별들의 움직임을 관측하는 일이 매우 중요했을 것이다.
이러한 필요성에 따라 우주와 천체의 움직임을 관측하고 연구하는 도구로서 바둑이 발명되었다는 설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고대문명의 발상지이기도 한 황하유역에는 해마다 홍수가 범람하여
선사시대 때부터 자연스럽게 천문학이 발달할 수 밖에 없었는데,
당시 하늘의 별자리를 표시하던 도구가 발전되어 오늘날의 바둑이 되었다는 설이 과학적인 설득력을 얻고 있다.
*우 칭위엔설
현대바둑의 틀과 수준을 진일보시켜 '영원한 기성(棋聖)'으로 불리는 중국 출신의 우 칭위엔(吳淸源) 九단은
바둑의 유래에 관해 "요왕이 아들 단주에게 놀이도구로써가 아니라
천문을 연구하는 도구로써 바둑을 가르쳐주을 것"이라며 앞서 두가지 설을 연결시킨 추론을 편 바 있다.
즉, 역학(易學)이나 제례(祭禮)에 관한 교양을 터득하라는 뜻에서 바둑 가르쳤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한국에서의 기원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승려 도림(道林)이 백제의 개로왕과
바둑을 두었다는 이야기가 《삼국유사》에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백제문화가 일본에 전파될 때 바둑도 함께 건너간 것으로 추측된다.
일각에서는 기자조선(箕子朝鮮)시대 때부터 바둑이 두어졌다는 설도 있지만, 사실적 근거는 불확실하다.
*근대바둑의 성립과 발전
고대 중국에서 발명된 이래 한국과 일본에 전파되어 일부 상류층 사이에서만 행해지던 바둑이
본격적으로 근대적인 게임의 토대를 갖추게 된 것은 중세 일본에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일본 막부(幕府)시대에 바둑은 국기(國技)로 적극 지원을 받으면서 바야흐로 르네상스를 맞게 된다.
바둑을 업(業)으로 삼는 기사(棋士)제도와 본인방(本因坊)등의 바둑가문이 생기고,
이들에 의해 룰이 정비되며 각종 이론, 정석이 태어나는 등 비로소 근대경기로서의 틀과 체계가 세워졌던 것이다.
그리고 20세기에 이르러 가문세습제도 대신 협회(일본기원)와 프로제도가 탄생하고,
신문사들이 기전의 스폰서로 나서면서 오늘날 현대바둑의 틀을 갖추게 된다.
한편, 한국에서는 현재의 바둑과는 달리 돌들을 미리 배치하고 두는 고유의 순장(巡將)바둑이 20세기 초반까지 성행했는데,
현대바둑이 도입된 것은 해방후 일본에 바둑유학을 다녀온 조남철 九단(현 한국기원 명예이사장)의 의해서이다.
특히 현대바둑 보급에 일생을 바친 조남철 九단의 선구적 노력에 힘입어 당시까지만 해도 한량들의 잡기 취급을 받던 바둑이
오늘날 본격적인 정신스포츠로 자리매김되기에 이르렀다.
*바둑알
옛날 바둑돌로는 대나무·비취·상아·옥석 등으로 만든 것을 사용했으나,
오늘날은 바다조개의 두꺼운 부분을 둥글게 깎아 다듬은 하얀 돌·검은 나지(那智)돌을 고급품으로 치며,
대중용으로는 유리로 만든 흑돌과 백돌이 사용된다.
바둑돌의 크기는, 흑돌은 7푼(分) 3리(厘), 백돌은 7푼 2리로, 흑돌이 1리가 크다.
이유는 시각적으로 흑돌이 작게 보이기 때문에 크게 한 것이다.
두께는 3~10.1mm짜리까지 있다.
*바둑판
바둑판크기는 세로 1자[尺] 5치(45.45cm), 가로 1자 4치(42.42cm)로 정해져 있다.
바둑판 재료는 옛날부터 비자나무를 최고품으로 치고 있으며,
은행나무·회나무·계수나무 등도 많이 사용되는데, 고려·조선시대에는 도자기나 옥돌로 만든 것도 있었다.
두께는 2~7치짜리가 많이 사용되며, 그 위로 1자 2치짜리도 있다.
바둑판 윗면에는 가로·세로 19줄의 선이 그어져 있고, 교차점인 361개의 점을 집이라고 해서 바둑돌을 놓는 자리이며,
그 집을 많이 차지하는 쪽이 이기는 게임이다.
바둑판 반면의 명칭은 중앙의 점을 천원(天元), 4귀와 4변(邊)에 있는 점을 화점(花點)이라고 한다.

** 장기 [將棋] **

-장기놀이방법
두 사람이 청 ·홍의 장기짝을 규칙에 따라 번갈아 두면서 겨루는 놀이.
-장기유래
장기는 약 4000여 년 전에 인도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다.
그 후 인도의 불교도들이 전쟁이나 살생을 금하는 계율 때문에 인간 본연의 파괴본능을 달래고,
수도를 하는 시간 외에 잠시라도 세속에 흐르기 쉬운 잡념을 떨쳐버리기 위해 전쟁을 모의(模擬)한 소재로
장기를 발명하였다고 하며, 또 일설에 미얀마 사람들은 자기네의 고대국 타이링의 왕비가 발명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왕을 지극히 사랑한 왕비가 전쟁만을 일삼고 늘 싸움터에만 나다니는 왕을 궁중에 머물게 하기 위해
궁리 끝에 만든 것이 바로 장기라는 것이다. 물론 말의 형태가 달랐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장기의 발상지는 역시 중국으로 보는 것이 타당한 것 같다.
장기짝(말) 자체가 초(楚) 한(漢)으로 되었고, 초패왕 항우(項羽)와 한왕 유방(劉邦)의 각축전을 모방한 것이 분명하며,
따라서 약 2,000년 전 삼국시대 이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한편, 코끼리의 뜻글자인 ‘象’이 인도에 있었다고 하여 현대 장기도 인도가 발상지라는 설이 있으나,
중국의 남월지방(南越地方)에는 인도 못지않게 코끼리가 많았다고 한 것을 보면
장기의 발상지는 역시 중국임이 거의 확실시된다.
또한 ‘象’은 실상(實相)이라는 ‘相’의 전음(轉音)이라고 하니 더욱 뒷받침이 되는 내력이 된다.  

** 체스 [chess] **

- 체스게임방법 
체크무늬 판과 말을 이용하여 두 사람이 펼치는 게임.
- 체스 유래
체스는 서양장기라고도 한다. 체스의 어원은 페르시아어로 샤(sh?h:왕)이다.
독일어로 샤흐(Schach), 프랑스어로 에셰크(echecs), 러시아어로 샤프마투라고 한다.
고대 인도에서 발상한 차투랑가(chaturaga)가 유럽에 전해졌으며, 그것이 변형되어 15세기경에 국제규칙이 확립되었다. 
세계적으로 체스 경기는 해마다 주니어 선수권대회, 2년마다 남녀 각 단체선수권대회(체스올림픽),
3년마다 남녀 각 개인선수권대회가 열린다. 세계체스연맹의 일부문으로서 국제통신체스연맹(ICCP)이 있다.
예로부터 체스는 왕후귀족의 놀이였으나, 오늘날은 수억의 경기 인구를 가진 두뇌 스포츠로서 전세계에 보급되었다. 
체스 세계챔피언은 러시아가 많고, 다음은 동유럽 여러 나라가 강세를 나타낸다. 
남북아메리카·서유럽에도 강호들이 있으나, 아시아 여러 나라는 수준이 낮다.
동남아시아, 아랍 제국 등에는 그 지역 고유의 체스가 남아 있고, 규칙도 각각 다르다.